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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작게임: 특급공포! 엘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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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게임의 효시 ‘엘비라’
어린이와 노약자, 심신장애자, 임산부는 절대 즐겨서는 안될 게임이 있다. 대체로 지금껏 소개한 괴작게임들이 강력한 후보라고 할 수 있지만 이번에 소개할 작품은 대미지의 강도가 남다른 ‘데프콘 1급’ 게임이라는 점에서 이전에 소개된 시리즈와 차원을 달리한다(…고 우기는 것이 괴작게임 시리즈의 모토다 -_-).

흔히들 공포게임을 나열해보라는 질문을 하면 “어둠 속의 나홀로를 시초로 바이오하자드가 나왔고 사일런트 힐이 어쩌고 저쩌고…”라는 레파토리를 읊기 일쑤다. 자고로 군대와 게임이라는 분야처럼 ‘안했으면서도 한 척’ 신공이 난무하는 분야가 또 어디 있으랴. 이렇게 유식한 티를 팍팍내는 똘똘이 스머프 친구에게 강력한 카운터펀치를 한방 먹이고픈 충동이 느껴지지 않았다면 당신은 진정한 게이머가 아니다(억지인가?).

▶ 어둠 속의 나홀로와 바이오하자드는 최신 게임이다 -_-

당신이 올드게이머가 아니라도 상관없다. 지금 시점에선 도저히 구할 길이 없는 이 게임.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지 않는 한 패키지 사진조차 구할 수 없는 이 괴스러운 공포시리즈를 친구에게 소개해준다면 아마 당신의 내공에 식음을 전폐하고 앓아눕는 모습을 보게 되리라 확신하노니, 그 거룩한 이름하여…

엘.비.라

사실 엘비라(Elvira, Mistress of the Dark)가 등장한 1990년 PC게임 시장은 어둠의 세력이 장악하고 있었다. 게임복사가 이웃집 동아전과를 찢어 딱지를 만들던 것보다 더 당당했던 시절, 필자는 그날도 어김없이 동네 컴퓨터가게 게임리스트전집을 뒤지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었다.

꼬질꼬질 코 묻은 돈을 모아 쥐고 게임리스트전집을 뒤지길 한 시간. 보다 못한 컴퓨터가게 아저씨가 신작을 입수했다며 슬며시 내놓은 ‘엘비라’는 왠지 제목부터 심상치 않은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마치 비디오방 아저씨가 “좋은 거 있어”라며 라벨이 없는 비디오테잎을 꺼내주듯… 왠지 외설스러우면서도 뜻 모를 비밀을 간직하고 있을법한 이 게임은 청소년기 왕성한 호기심을 자랑하는 필자의 동공을 무한대로 확장시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 영화와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엘비라. 뭔가 야릇한 상상을 할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ㅠㅠ

하지만 엘비라라는 이름의 판도라 상자는 청순하고도 솔직담백한 필자의 여린 마음으로 열어선 안될 물건이었다. 청소년기의 왕성한 호기심을 충족시켜줄 것이라는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화면에 난무하는 주인공의 시체를 보며 본인은 약 한 달간 동생과 화장실을 동행출입 할 수 밖에 없었다.

▶ 추억의 유통사와 개발사다

우리 어여쁜 공주님을 구출해보아요
이 게임은 유령잡이(그 당시 유행하던 영화제목을 참고하자면 고스트버스터)인 봅이 엘비라라는 어느 어여쁜 아가씨 성주 엘비라의 부탁으로 어둠에 빠진 킬브래건트(Killbragant)성에서 에멜다의 심복들이 지키고 있는 여섯 개의 황금 열쇠를 찾아 부활을 꿈꾸고 있는 100여년 전 성의 여주인이었던 악마의 화신 에멜다를 처치하고 성주 엘비라가 성을 되찾게 해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헥헥…

사실 히로인 엘비라가 목숨 걸고 구해주고픈 충동을 느낄 만큼의 미모를 갖춘 건 아니었지만 당시의 기술력으로 볼 때 파이날판타지 10의 유우나 정도는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호러픽션어드벤처라는 이름으로 나온 이 게임은 90년대 후반 스포츠게임으로 유명세를 탄 어콜레이드를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만든 화제작이었고 엘비라 2, 엘비라 3(왁스웍스) 등 시리즈를 3편이나 지속시키며 공포게임의 어머니 역할을 톡톡히 했다.

▶ 지금봐도 아주 나쁘다고 볼 수 없는 미려한(?) 그래픽

2D 디스켓 9장으로 구성된(용량을 따지자면 3.2MB) 엘비라는 1990년 당시로서는 매우 도전적인 시도를 감행했다. 전세계인의 80% 이상의 컴퓨터 인구가 사용하는 허큘리스(흑백), CGA(4컬러) 그래픽카드를 아예 지원목록에서 빼버리고 EGA 16컬러와 VGA 256컬러만을 지원하는 유례없는 시도를 감행한 것이다. 물론 최상급의 그래픽 퀄리티를 보여준다는 말이 골자였지만 흑백화면만 바라보며 컬러모니터가 21세기에나 등장할 줄로 알았던 게이머들로선 눈물을 삼킬 수밖에 없었던 발표였다.

지금 같으면 개발사 홈페이지로 몰려가 항의의 메시지라도 던졌을 터이지만 게임을 복사해주는 컴퓨터가게주인이 그 게임을 제작한 것이라고 착각하던 시절(-_-), 개발사가 주도하는 방향으로 이끌려갈 수밖에 없었던 것도 게이머였다. 뭐 그렇다고 해서 헝그리 정신으로 무장한 게이머들이 최고의 공포물로 끗발을 날리고 있던 엘비라를 포기했을리는 없을 터. 일명 ‘SIMVGA 신공’이라고 불리우는 가상 VGA 프로그램으로 잘 보이지도 않는 엘비라를 흑백화면으로 플레이하며 눈물 젖은 2D 디스켓을 어루만졌다는 후문이다.

게임은 마이트앤매직, 위저드리 등 당시 유행일변도를 타던 1인칭 방식으로 진행된다. 물론 지금 나오는 게임처럼 자연스런 동작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 이동시마다 깍두기처럼 화면이 휙휙 지나가는 방식이지만 한 방향으로만 시야가 고정될 수밖에 없는 이런 시스템은 플레이어의 공포감을 극대화시켜주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아무 생각 없이 앞만 바로 보고 있다가 왼쪽으로 휙 돌아봤을 때 우두커니 플레이어를 지켜보고 있는 적의 모습은 지금도 심장을 벌렁벌렁거리게 만드는 최고의 아찔함이 아닐 수 없었다.

무엇보다 이 게임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꿈에 나타날까 두려울 정도로 상상을 초월하는 잔혹함이라 할 수 있다. 불공평하게도 플레이어가 죽이는 적은 평범하게 쓰러져버리고 말지만 일단 적에게 죽임을 당한 플레이어는 그 결과가 스페셜코스로 마련된다.

▶ 병사의 칼등에 죽으면 이렇게 되고

▶ 독수리의 부리에 쪼이면 이렇게 된다 -_-

목이 잘려 기름솥에 튀겨지는 것은 기본이요, 나머지 살을 발라 구더기들의 밥으로 주는 장면은 예사. 개한테 물려죽을 땐 미친 식인개가 물어뜯은 시체가 화면에 그려지고 이마에 도끼가 박힌 장면, 팔 다리가 따로 노는 표현 등 엘비라는 지금껏 발매된 그 어떤 게임보다 잔혹한 묘사로 가득 찼다(글을 쓰면서도 역겨움이 -_-;;). 혹자는 다채롭게 죽는 장면을 보면서 야릇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고도 하나 변태가 아닌 이상에야 기름솥에 튀겨지는 자신의 분신을 보고 좋아할 수가 있으랴… 게다가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오는 비명소리는 안그래도 소름끼치는 장면의 잔혹함을 배가시키는 양념으로 작용한다.

또 레시피를 이용해 마법을 만드는 시스템은 안 그래도 어려운 엘비라의 난이도를 사법고시패스에 필적하는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실제 트레이너나 무적파일을 가지고서도 클리어에 몇 달이 걸린다고 정평이 난 엘비라는 당체 설명 한줄 없는 마법술 때문에 플레이어가 정녕 연금술의 달인이 되어만 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엘비라에서 마법을 만드는 곳은 성안의 부엌인데(왠 마법을 부엌에서…) 재료가 될만한 물건을 잘 골라 섞어야만 직접 사용할 수 있는 결과물로 나타난다. 위에서 언급했던 재료가 될 만한 물건은 플레이어가 알아서 잘 결정해야 하며 재료를 잘못 고르거나 재료의 수가 부족하면 3번의 경고 끝에 그냥 게임이 끝나버리고 만다. 헉…

▶ 무적상태라 해도... 결코 쉽지 않다

과거 엘비라에 대해 토론을 벌이던 대부분의 게이머와 각종 공략집에서도 ‘일단 무적 세이브 파일을 로딩 후에…’라는 조건을 달고 난 후에야 플레이방도가 나올 정도였으니 그 난이도는 충분히 짐작하리라 본다. 항상 암호표가 게임의 필수요소로 등장하던 시절이었던 만큼 매뉴얼에 마법조합표가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국내에 정품을 소지한 유저는 아마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엘비라의 플레이시간은 에디트를 했느냐, 안했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의 차이를 보여준다. 에디트를 안한 상태에서 게임의 엔딩을 봤다는 목격자의 증언에 따르면 플레이 도중 디스켓을 수 십장 찢고 붙이고를 반복한 끝에 약 2달간의 클리어타임이 소요됐다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설령 에디트를 한다 해도 한달이 가까운 시간동안 꽈배기처럼 꼬인 미로의 나락에 빠져 삽질과 삽질을 반복하는 것이 보통. 게임자체가 그렇게 구성된 탓이긴 하나 당시 대부분의 게이머가 청소년층이었던 만큼 영어를 모르는 상태에서 극약과 포션을 구분 못했던 탓 역시 상당한 영향을 미쳤으리라 생각된다.

▶ 눈 없는 경비대장에게 끌려온 주인공

엘비라는 플레이어가 입장한 고성 안에서의 플레이로만 이루어져 있다. 약 3층으로 구분된 고성은 대부분의 문이 잠겨 있는 상태에서 플레이어가 전투와 탐험을 통해 획득한 열쇠로  열 수 있는데, 과거의 여느 게임이 그렇듯 지도가 제공되지 않은 상태에서 기억만을 더듬어 잠겨진 문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간혹 열쇠가 사라지는 버그로 인해 지금껏 힘겹게 기름에 튀겨져가며 고난과 역경을 헤치고 온 게이머들이 좌절의 나락으로 빠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는 것을 보면, 이 얼마나 가슴 두근거리고 설레지 않을 수 없는 게임이 되겠는가~

엘비라의 후손들
1편의 성공(?)에 힘입어 2년 후 새롭게 발매된 엘비라 2는 고성의 음침한 분위기를 벗어나 공포영화 전문스튜디오라는 현대적 배경을 채용했다.

▶ 전작에 이어 호평을 받았던 엘비라 2

헐리우드의 잘나가는 공포영화전문 스튜디오인 블랙 위도우(Balck Widow)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 엘비라 2는 촬영 중 실제로 등장한 악마의 손아귀에서 엘비라라는 공포 영화의 주인공을 구출해내고, 악마를 죽이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1편보다 훨씬 많은 미로의 등장으로 게이머들에게 적지 않은 압박을 주었으나 충실한 게임구성 탓에 역시 좋은 인기를 유지할 수 있었다.

3편 왁스웍스는 플레이어가 희대의 살인마 잭 더 리퍼가 되는가 하면 지하광산에서 외계인과 사투를 벌이고 이집트의 신전까지 진출하는 등 ‘후속작은 왠지 월드와이드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개발사의 강박관념을 벗어나지 못한 작품이다. 때문에 잔혹함에 있어서는 1, 2편을 넘어선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떨어지는 게임성으로 엘비라의 족보에서 빼버려야한다는 항의를 받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 왜 나왔는지 의문이 드는 아케이드용 엘비라 (물론 개발사는 다르다)

아케이드 오락실용으로 나왔던 엘비라 마디간은 말할 것도 없었던 괴작. -_-; 횡스크롤 바탕 아래 원더보이처럼 앞으로 달리기만 하던 엘비라의 광경은 팬들로 하여금 아케이드 오락실의 기계를 때려 부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 엘비라 출시 이후 공포게임의 계보

어둠의 씨앗
어둠속의 나홀로
어둠의 장막
악의 유산
7번째 손님
가브리엘 나이트
판타스마고리아 등

이번 시리즈는 유머러스함보다는 일반인들이 쉽게 떠올리기 힘든 ‘공포의 괴작성’에 초점을 맞추고 작성됐다. 비록 제작사 자체가 사라진 상태라고 볼 수 있지만 자신도 한번쯤 날카로운 검과 마법주문이 적힌 양피지로 무장한 채 고성의 깊은 곳에 붙들린 엘비라를 구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아래의 링크를 클릭하기 바란다. 가마솥에 튀김구이가 될 각오가 충분히 되어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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