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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크앙 기자는 블레이드앤소울에 반했다. 아니, 그 안의 한 캐릭터에게 반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지스타 2010' 에 등장한 블레이드앤소울 시연대에서 처음 만난 캐릭터. 홍석근 사부의 4번째 제자이자 세상 모르고 자고 있던 나를 살짝 엄한, 그러면서도 따뜻한 눈길로 깨워주던, 살짝 그을린 갈색 피부와 백색 머릿결의 그녀. 바로 '진영 사저' 다.
▲ 새침한듯 상냥한 눈빛의 진영 사저, 첫 눈에 반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녀는 이내 거무죽죽한 진서연 일당에 의해 세상을 하직하고 만다. 그 장면을 처음 봤을 땐 가슴이 아팠다. 두 번째 봤을 땐 눈물이 흘렀다. 세 번째 봤을 때, 크앙은 다짐했다. 내가 그녀를 부활시키고 말리라고.
캐릭터 커스터마이징 시작, 진영 사저의 얼굴을 구하라!
사실 위와 같은 계획(?)은 3차 CBT에서 처음 수립되었다. 본격적인 캐릭터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해진 것이 그 시기였기 때문이다. 단 하나의 걱정은 ‘블레이드앤소울’ 의 헤어스타일 커스터마이징 시스템이 색상 변경 외에 다른 변경을 지원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는데, 다행히도 기본으로 제공되는 파츠에서 진영 사저와 100% 같은 헤어스타일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가장 큰 고비를 넘긴 셈이다.
그러나 3차 CBT에서는 진영 사저 부활 프로젝트를 차마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에피타이징 테스트까지 포함해봐야 고작 4주, 그 이후에는 초기화 돼 버릴 캐릭터에 진영 사저의 영혼을 불어넣는 것은 너무 잔인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 프로젝트는 OBT 시작 이후로 연기되었고, 드디어 21일 오후 4시가 다가왔다.
▲ 다행히도 캐릭터 기본 프리셋에는 진영 사저의 헤어스타일이 존재했다
본연의 업무도 내팽개치고 ‘블레이드앤소울’ 에 접속한 크앙. 그러나 뭘 어찌 해야 할 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진영 사저의 모습도 명확하게 기억나지도 않을 뿐더러, 종족, 키, 체형 등 세부적인 프로필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흰색의 머릿결, 약간 그을린 갈색 피부, 그리고 새초롬한 눈과 그 아래에 위치하고 있는 매력점 정도… 그러고 보니 진영 사저에 대해 아는 것이 의외로 없었다.
“가소로운 것, 네가 이러고도 진영 사저 덕후를 자청할 자격이 있느냐?”
가슴 깊은 곳에서 마음의 소리가 들려왔다. 양심이 찔린 크앙은 다급히 인터넷을 통해 진영 사저의 모습을 수소문했다. 그러나 의외로 비인기 캐릭터였는지, 이목구비가 세세하게 나온 고화질의 이미지는 찾기가 어려웠다. 결국 직접 부딪혀 보는 방법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음… 그러니까 권사였고, 키가 의외로 큰 것 같았으니까 곤족… 이었나? 눈꼬리는 약간 위쪽이고, 새초롬한 표정이니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무 준비 없이 진행한 ‘인조 진영 1호’ 는 완벽한 실패작이었다. 일단 진영 사저는 곤족이 아닌 진족이었고, 진족의 특성인 동글동글한 계란형 얼굴은 곤족에서 절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로부터 시작해 무려 40여분이나 제작했건만, 게임에 접속해 실제 진영사저 옆에 나란히 선 순간부터 ‘이건 아니다’ 라는 생각이 뇌리를 수천만 번 스쳐갔다. 나름 열심히 만들었는데, 새침하고 뭔가 동글동글한 진영 사저와 달리 ‘인조 진영 1호’ 는 커다란 덩치와 뭔가 악당형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이건 뭔가 아니었다.
▲ 딱 봐도 뭔가 아니다. 심하게 아니다
그러나 건진 것도 있었다. 가장 큰 성과는 일단 진영 사저가 곤족이 아니고 진족이라는 사실을 홍문파 도복(블레이드앤소울의 의상 대부분은 종족별로 핏이 다르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아무리 조절해도 동글동글한 얼굴형이 안 나오는 것을 나 자신의 능력 부족 탓으로 알고 있었는데, 애초에 종족이 달랐으니 제대로 만들어질 리가 있나!
두 번째 성과는 진영 사저의 세세한 얼굴을 게임 내에서 직접 확인해 캡쳐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듀얼모니터 따위의 부르주아식 생활과는 거리가 먼 크앙 기자는 최대한 줌을 당겨서 찍은 진영 사저의 사진을 프린트했다. 컬러는 없으니까 흑백으로. 하지만 괜찮았다. 적어도 이목구비는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
▲ 게임에 접속했으니 진영 사저의 모습을 정확히 기록하자
수많은 시도, 그리고 눈물
실패작인 ‘인공 진영 1호’ 를 뒤로 한 채, 크앙은 또 다른 ‘진영 사저’ 만들기에 돌입했다. 종족을 진족으로 바꾸자 진영 사저 특유의 계란형 얼굴이 손쉽게 나왔고, 덩치 또한 오리지널과 비슷해졌다. 희망이 보였다.
그러나 크앙은 또다시 좌절을 맛봐야 했다. 이번에 크앙의 애를 끓게 만든 범인은 너무나도 세세한 이목구비 조절, 그리고 커스터마이징 중의 캐릭터가 간혹 짓곤 하는 이상야리한 표정이었다. 크앙은 캡쳐한 진영 사저의 사진에 자까지 대 가며 각종 비율을 계산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밀리미터 단위로 변하는 이목구비 크기와 각도, 위치, 두께 조절을 하기 어려웠다. 거기다가 커스터마이징을 하고 있자니 캐릭터가 입술을 요상하게 꼬아 가며 웃질 않나, 눈웃음을 치지 않나… 심지어 나를 쳐다보는 각도까지도 달랐다.
열심히 꾸민 결과, 일단 캐릭터는 상당히 비슷해졌다. 그러나 여전히 뭔가 어색했다. 제로에서부터 시작해서인지, 커스터마이징에 걸린 시간도 앞에서보다도 더욱 긴 1시간 가량이나 소비되었다. 이대로 캐릭터를 생성했다가 또 다를 경우, 멘탈이 붕괴되고 육체가 소멸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래서 펜을 들었다. 지금까지 설정해 놓은 얼굴과 몸, 각종 신체 파츠의 조절값을 커다란 A4용지에 모조리 적기 시작했다. 제 아무리 진영 덕후라 하더라도 정신이 아득해지는 작업, 그러나 커스터마이징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 보다는 나았다.
결과적으로 이는 큰 도움이 되었다. 커스터마이징을 마친 ‘인공 진영 2호’ 는 ‘1호’ 보다는 나았지만, 여전히 원판과는 달랐다. 눈꼬리는 지나치게 올라갔고, 광대뼈도 너무 튀어나왔다. 왠지 동양의 여악당. 그래, ‘스트리트 파이터 4’ 의 ‘주리’ 와 닮았다. 내가 원한 것이 ‘주리’ 가 아니고 ‘진영’ 이라는 점만 빼면 더할 나위 없는 결과였다. 제기랄.
▲ 어느 쪽이 오리지날인지는 말로 설명 안 해도 알 듯 진영 사저를 원했는데 주리라니!
▲ 옆에서 보면 은근 조금 닮은 것 같지만, 영 아니다
그러나 ‘1호’ 보다는 원판과 훨씬 비슷했다는 점이 위안이 됐다. 게다가 오리지널 진영 사저의 옆에 나란히 서 보니 어느 부분을 어떻게 고쳐야 할 것인지가 눈에 들어왔다. 눈꼬리를 내리고, 폭을 늘리고, 키를 줄이고, 피부는 좀 더 어둡게…… 눈에 띄는 차이점을 닥치는 대로 적었다.
▲ 본격적인 작업 시작! 이때부터 게임메카 기자들이 크앙을 미쳤다고 하기 시작했다
▲ 비율을 맞춰야 해! 섬세한 비례식과 삼각함수 계산은 기본
▲ 수정해야 할 점을 싹! 다! 적어라
이후 과정은 순탄했다. 캐릭터 커스터마이징으로 돌아와 미리 베껴 놓은 신체 데이터를 그대로 입력하고, 앞에서 체크한 차이점들을 반영했다. 그리고 접속 후 오리지널 진영 사저와 비교, 차이점 찾기, 커스터마이징…… 이렇게 5번을 더 반복했다.
그리고 마침내, 신체 비율이 아주 약간 다르긴 하지만 얼굴과 분위기 등에서 진영 사저를 쏙 빼닮은 ‘인공 진영 7호’ 가 탄생했다. 총 소요시간 5시간 30분, 삭제된 클론 6명을 남긴 대기록이었다. 이름마저도 ‘넷째 사저 진영’ 으로 지어진 그녀는 눈동자 색만 빼고 모든 면이 진영 사저와 같았다. 옆에 서 있을 땐 포즈와 표정 차이로 인해 약간 달라 보이지만, 조금만 움직여도 완벽한 클론으로 보일 정도였다. 6월 21일 오후 10시, 무일봉에는 두 명의 진영 사저가 존재했다.
▲ 실패를 거듭하고 거듭하고 거듭하다 보니 아까보다 많이 비슷해졌다
▲ 조금씩 진영 사저의 모습을 갖춰가는 홍문파 막내 제자
▲ 오오 드디어 근접했다
▲ 그리고 드디어 진영 사제 클론 완성!
▲ 자꾸 눈을 깜빡이고 포즈가 달라서 100% 똑같진 않지만... 실제로 움직여 보면 정말이지... (감동)
▲ 사부님 저희 중에 스파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진영사저 놀이 시작
쏙 빼닮은 진영 사저를 만들었으니, 이제 남은 것은 신나게 노는 것 뿐이다. 원작에서는 나오지 않는 다양한 장면을 취해 보거나, 분신술 놀이를 하기도 했다. 이벤트 영상에서는 미리 촬영된 영상이 아니라 자신의 캐릭터 정보를 그대로 불러들여 실시간으로 연출하는 ‘블레이드앤소울’ 의 특성 상, 분명히 진서연 일당의 손에 죽은 진영 사저가 멀쩡히 살아 돌아오기도 했다. 물론 거기서의 진영 사저는 나였다.
이후 대나무 마을로 이동해서도 ‘넷째 사저 진영’ 의 유희는 끝나지 않았다. 홍문파 도복을 입고 탄약 상자 옆쪽에서 “막내야, 이쪽이야.” 라고 외치자 사람들이 신기한 눈으로 키득키득 웃으며 지나갔다. OBT에서 ‘블레이드앤소울’ 를 처음 접한 유저들은 내 앞으로 와 ‘F’ 키를 연타하다가 자신이 속은 것을 문득 알아차리기도 했다. 유쾌한 시간이었다.
▲ 분신 대결은 기본이요
▲ 셋째 사형과의 은근슬쩍 로맨스까지...
▲ 배신자에게는 천벌을! 네가 고자라니!
▲ 요즘 대세가 동성애 코드라면서요?
그러나 ‘넷째 사저 진영’ 을 만든 이유는 이러한 시덥잖은 장난을 위해서가 아니다. 홍문파를 멸문시킨 진서연 일당에게 ‘진영’ 의 손으로 직접 복수를 하기 위해서. 앞으로 다양한 모험을 펼쳐나갈 것이다. 물론 중간에 ‘다섯째 사형 화정’ 에게 후배 취급을 당하기도 하지만(홍문파의 서열 상 진영이 더 위다), 중요한 건 그 뒤에 있다. 거거붕, 포화란을 넘어 진서연의 목에 권을 들이대는 날까지, ‘넷째 사저 진영’ 의 모험은 계속된다.
▲ 진서연 일당의 손에 안타깝게 죽어간 진영 사저의 영혼은
▲ 내가 되갚아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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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게임메카 류종화 기자 (크앙, jong31@gamemec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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